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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광태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9-27 14:00연락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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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대대로 부잣집에서 자라 대형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상우(조인성)는 해고 노동자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는 아내 예지(조여정)에게 “메소드 연기를 잘해서 좋다”고, 칭찬도 조롱도 아닌 말을 한다. “그 사람들하고 너는 다른데, 너는 같다고 생각하잖아.” 예지는 이렇게 받아친다. “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려는 거야.” 예지는 자라온 환경도 삶의 방식도 다른 미옥(전도연)과 호석(설경구)을 사랑할 수 있을까. 23일 개봉하는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이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서 계급과 노동, 정체성과 직업 윤리, 소통에 관한 수많은 질문들이 가지를 뻗어나간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의 난해함과 비정함을 꼿꼿이 응시하면서도 냉소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가고자 하는 거장의 강인한 의지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대기업 공장에서 용접 노동자로 일하던 호석은 회사의 정리해고에 ‘옥쇄 파업’으로 맞섰다가 크게 다치고 구속까지 되면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사는 인물이다. 항상 찰랑찰랑 넘칠 듯한 분노를 안고 살면서 주변 사람들과도 관계가 틀어진 그는 아내 미옥(전도연)이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마뜩잖으면서도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예지와 상우를 냉정하게 밀어내지만은 못한다.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상우는 인물도 좋고 매너도 좋은 사업가다.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친절한 태도에 미옥이 잠시 설레는 마음을 느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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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지는 진심으로 노동자의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하고, 미옥과도 친해지고 싶어 한다. 미옥은 예지와 친구가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득 튀어나오는 예지의 거리감이나 상우의 사무적인 얼굴은 네 사람 사이에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반복해 등장하는 네 사람의 술자리는 재벌 2세가 연예인처럼 사랑받고 노동의 가치는 지워지거나 초라해지는 시대에 대한 씁쓸한 초상화처럼 보인다.
‘가능한 사랑’은 계급이 다른 두 부부의 이야기처럼 시작되지만, 호석과 미옥의 어린 시절, 그리고 쌍용자동차 사태를 연상시키는 공장 파업과 강제진압, 훗날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미옥과 호석의 성장담은 세상의 비정함에 삶이 훼손되기 전의 풋풋한 아름다움과 끝내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계급의 굴레를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감독의 전작인 ‘박하사탕’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인상적인 건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해고자와 가족들의 심리 상담 장면이다. 회사로 돌아간 ‘산 자’와 해고된 ‘죽은 자’로 갈리면서 다 함께 어울려 살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맘 편히 탈 수 없게 된 여성, 대기업 ‘노동 귀족’이라고 조롱당하다가 어느덧 ‘빨갱이’로 손가락질받으며 친구들 앞에서도 가짜 웃음을 풀지 못하는 남성 등이 풀어놓는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영화의 이야기 전개에서 불필요할 수도, 짧게 넘어갈 수도 있는 장면을 영화는 길게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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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은 21일 언론시사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예지는 영화를 만드는 나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며 “예지가 찍는 다큐멘터리의 내용,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실제 다큐처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는 두 부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노동과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라며 “자기 일을 잃어버림으로써 삶이 파괴되고 정체성을 상실하면서 마음속의 텅빈 자아를 느끼는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영화는 두 부부와 미옥·호석의 아이 철이까지 상우의 서해안 별장으로 휴가를 함께 가면서 밀도 높은 긴장과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로 들어간다. 호석은 이곳에 오기 전에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로 감정의 둑이 터지면서 마음속을 내보이고, 미옥은 불편한 환대의 실체를 깨닫는다. 예지와 상우는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넷은 각자의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이 파국을 통해 절대 뒤집힐 수 없을 것 같았던 굳건한 위계를 전복시키는 연출력이 경이롭다.
네 배우가 펼치는 연기 역시 장관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뛰어나다. 특히 ‘박하사탕’의 영호를 떠올리게 하는 설경구의 빼어난 연기는 그가 왜 이 영화를 찍으면서 “초심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고 말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얼마 전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은 ‘가능한 사랑’은 23일부터 일부 영화관에서 관객들을 만난 뒤 11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le=vipa&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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