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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민생현대미술관 ⟪알베르토 자코메티: A LIFE OF CREATION⟫ 전시 포스터 / 출처. 상하이민생현대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습도가 높은 상하이의 여름,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귀한 전시들이 도시를 찾아왔다. 그중 하나는 상하이민생현대미술관, 베이징민생현대미술관, 프랑스 자코메티 재단이 함께 개최한 전시 ⟪알베르토 자코메티: A LIFE OF CREATION⟫(2026.7.17.~12.6)으로, 프랑스·중국 문화의 봄 프로젝트 20주년과 자코메티 타계 60주년이 겹친 올해를 기념해 마련됐다. 반년 앞선 올해 초에는 베이징민생현대미술관에서도 파리 퐁피두 센터의 소장품들이 ⟪색채의 정.⟫이라는 제목으로 중국을 방문했으며, 양국의 교류 전시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관련 칼럼: <베이징은 퐁피두 명작들의 줄을 새로 세웠다, 색깔맞춤으로>, 26.03.26]
감정의 결을 따라 빚어진 자리
상하이 웨이하이루(威海路)에는 1층엔 상하이민생은행이, 5~6층엔 상하이민생현대미술관이 들어선 빌딩이 위치해 있다. 건물 1층 통유리 너머로 3미터 높이의 조각 <Tall Woman I>(1960)이 시선 안에 들어온다. 가늘고 길게 늘어진 몸, 시간에 갉아 먹힌 듯 거친 표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창 안을 들여다본다. 원래 이 조각은 뉴욕의 한 은행 광장에 세워질 예정이었고, 완성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코메티 스스로 납품을 거부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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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조각은 또 다른 은행 건물의 창가에 서서 상하이의 거리를 내다보고 있다.
상하이민생현대미술관 건물 입구 / 사진. © 배혜은
알베르토 자코메티 <Tall Woman I>(1960) / 출처. 상하이민생현대미술관 홈페이지
전시장에 들어서면 걸음이 자연히 느려진다. 조각과 회화, 드로잉과 판화 등 212여 。과 처음 공개되는 아카이브가 열세 개의 공간을 채우고 있다. 상하이민생현대미술관 류전쯔(刘震子) 박사와 프랑스 큐레이터 로맹 페랭(Romain Perrin)의 협업 하에 탄생한 이번 전시의 큐레이션은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을 오마주하며, 작품 연대기 순이 아니라 감정의 결을 따라 굽이치는 길로 표현되었다. 상하이 푸동미술관의 ⟪오르세 소장전⟫ 공간을 설계하기도 했던 프랑스 디자이너 세실 드고(Cécile Degos)는 절제된 재질과 색으로 ‘인체와 공허와 그 사이의 거리’라는 자코메티 예술의 핵심을 구현하려고 했다. 전시장 초입부에서 분위기를 압도하는 <The Nose>(1949)는 철제 틀 안에 매달린 머리 모양의 조각으로 길게 뻗은 코끝이 틀 밖으로 나간다. 가늘고 긴 다리로 성큼 내딛는 <Walking Man I>(1960)은 반세기 뒤인 2010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억 430만 달러에 낙찰되며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조각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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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알베르토 자코메티: A LIFE OF CREATION⟫ 프롤로그 / 사진. © 배혜은
알베르토 자코메티 <The Nose>(1949) / 사진. © 배혜은
알베르토 자코메티 <Walking Man I>(1960) / 사진. © 배혜은
인상파 화가로 알려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아버지인 조반니 자코메티가 열일곱 살 아들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도 만나볼 수 있다. 주로 조각품으로 널리 알려진 자코메티지만 전시장 곳곳엔 그가 그린 그림들도 나란히 걸려 있다. 1920년대에 그린 고향 계곡의 풍경화, 가족을 그린 초상화와 더불어 1935년부터는 회화와 조각을 나란히 병행했던 흔적도 이어진다. 조각가의 손끝에서 나온 붓질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몰랐던 자코메티의 다른 얼굴이 조금씩 드러난다.
조반니 자코메티 <알베르토 자코메티>(1918) / 사진. © 배혜은
전시 ⟪알베르토 자코메티: A LIFE OF CREATION⟫ 전경 / 사진. © 배혜은
다른 온도의 자코메티
전시의 제목인 “塑我此生(소아차생)”은 “나의 이 생을 빚다”라는 뜻이다. 조각가가 손끝으로 형태를 빚어내듯, 이 전시 역시 한 사람의 생 전체를 다시 빚어본다. 텅 빈 공간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그 형상들 앞에 관람객을 세워두는 일을 통해 ‘존재’란 무엇이며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던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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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가늘게 늘어난 그 조각들에서 인간 존재의 불안을 읽어낸 후로 사람들은 자코메티를 고독한 예술가로 기억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 곁에 다른 온기 하나를 슬며시 놓아두었다. 바로 파리의 친구들과 나누던 시간이나 카페에서의 대화, 작업실로 오가던 익숙한 얼굴들이다. 그 흔적은 <끝없는 파리(Paris sans fin>라는 화첩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57년부터 그의 손끝을 떠나지 않았던 이 미완성 작업은, 오랜 벗이자 출판인이었던 테리아드의 손을 거쳐 사후에야 세상에 나왔다. 150。의 석판화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들처럼 이어 붙어, 그의 평범했던 하루를 조용히 그려낸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끝없는 파리(Paris sans fin)> 화첩 / 사진. © 배혜은
이어서 만 레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같은 사진 거장들, 그리고 그를 수십 년간 가장 가까이서 기록한 스위스 사진가 에른스트 샤이데거의 시선 속 자코메티를 마지막 전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작업실에서 혹은 거리에서, 카메라는 그의 가장 사적인 순간을 붙잡았다. 그중 한 장, 브레송이 담은 사진이 유독 남는다. 좁은 작업실 안, 걸어 나가는 자코메티의 뒷모습 곁으로 그가 빚어낸 조각이 나란히 서 있다. 그 뒷모습 위로 평생 그가 빚어온 걷는 사람들의 걸음이 조용히 겹친다.
[왼쪽부터] 자코메티를 촬영한 사진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Alberto Giacometti working on his exhibition at Maeght Gallery>(1961) / 사진. © 배혜은
상하이=배혜은 칼럼니스트
에서 나온 붓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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