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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피광태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6-09-26 22:45연락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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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회 에미상 시상식이 끝났다. 올해 한국인들이 기대했던 《성난 사람들2》의 리미티드 시리즈 작품상 수상은 불발됐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의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에미상은 이제 글로벌화된 콘텐츠 시장에서 흐름을 볼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제2의 《오징어 게임》은 없었지만, 우리가 에미상을 봐야 할 이유는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드라마 《DTF 세인트루이스》 포스터 ⓒ쿠팡플레이
미국의 잔치였던 에미상, 이제 남 얘기 아니다
영화의 오스카, 음악의 그래미, 공연의 토니와 함께 미국 4대 엔터테인먼트 시상식으로 꼽히는 에미상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방송의 아카데미'로 알려져 있다. 네 시상식의 이니셜을 따 'EGOT'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에미상은 어딘가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진다. 미국 드라마를 챙겨 보는 이들이 적을뿐더러, 한국 작품이 거론되지 않는 시상식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2022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에미상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2022년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 14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이정재의 남우주연상과 황동혁 감독의 드라마 연출상을 포함해 6개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에미상도 한국인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 여세를 이어 2024년에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주축이 돼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성난 사람들》이 에미상에서 무려 8개 부문을 휩쓸면서 이 상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제 에미상을 포함한 'EGOT'는 한국인들에게도 낯선 이름이 아니다. 오스카에서는 《기생충》이 4관왕에 올랐고, 그래미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이 수상했다. 토니상에서는 한국에서 탄생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6관왕을 거머쥐었다. 한국은 비영어권 최초로 'EGOT' 4개를 모두 연결한 나라가 됐다. 한국 창작자와 K콘텐츠의 이름이 미국을 대표하는 주요 시상식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거론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건 2016년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시장 재편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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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글로벌 OTT는 전 세계 시청자들이 같은 콘텐츠를 거의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그 변화 속에서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같은 K콘텐츠도 순식간에 세계로 퍼져 나갔고, 미국 시장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 중심의 'EGOT'가 세계 각국의 콘텐츠와 창작자를 자연스럽게 끌어안게 된 배경이다.
그래서 에미상은 과거보다 훨씬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한국 혹은 한국계 작품의 후보 지명과 수상 여부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 정작 상을 받는 미국 드라마들은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 글로벌 콘텐츠 시대에 들어선 한국 드라마 역시 에미상의 흐름을 통해 세계 드라마 시장의 변화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국내 시청자만이 아니라 글로벌 시청자를 상대해야 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제78회 에미상에서는 어떤 변화를 읽어낼 수 있을까.
가장 크게 파란을 일으킨 작품은 애플TV+의 신작 드라마 《위도우스 베이의 저주》다. 여러 시즌을 이어온 시즌제 작품들이 강세를 보여온 미국 드라마 시장에서 첫선을 보인 《위도우스 베이의 저주》는 최우수 코미디 시리즈상을 포함해 무려 14개 부문을 수상하며 역대 코미디 시리즈 최다 수상 신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은 뉴잉글랜드 앞바다의 저주받은 섬을 관광 명소로 만들려는 시장의 고군분투를 그린 호러 코미디다.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는 호러와 코미디를 엮어 공포와 웃음을 자유롭게 오가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매슈 리스라는 독보적인 연기력을 가진 배우의 힘도 크지만, 서로 다른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만들어내는 도파민과 카타르시스는 장르 결합 자체가 이제 하나의 뚜렷한 흐름이 됐음을 보여준다.
한국 드라마에서도 《오싹한 연애》나 《견우와 선녀》처럼 오컬트와 멜로가 결합하고, 《중증외상센터》처럼 의학 드라마에 액션의 쾌감을 접목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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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다른 장르를 얼마나 이질감 없이 결합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느냐가 글로벌 드라마 시장의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걸 이 작품이 증명했다.
우리에게 《브레이킹 배드》와 《베터 콜 사울》로 잘 알려진 빈스 길리건의 신작 《플루리부스: 행복의 시대》도 주목할 만하다.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 작품은 모든 사람의 뇌를 하나로 연결하는 외계 바이러스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모두가 연결돼 행복해 보이는 세상이 오히려 지옥일 수 있다는 역설을 통해 인공지능(AI) 시대를 꼬집는 블랙코미디다.
황당한 설정 속에서도 풍자적인 웃음이 터지는 빈스 길리건 특유의 유머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SF라는 익숙한 장르가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를 만났을 때 얼마나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장르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단순히 장르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진다. 《플루리부스…》는 그 。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드라마 《더 피트》 포스터 ⓒ쿠팡플레이
오래될수록 더 세지는 시즌제의 힘
권태로운 중년의 삶을 살아가던 세 남녀의 비틀어진 삼각관계를 블랙코미디와 미스터리, 휴먼드라마로 풀어내 TV 미니시리즈 작품상을 받은 《DTF 세인트루이스》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양한 성적 취향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등장한다는 .도 인상적이다. 한국 드라마에도 소재와 표현의 폭을 어디까지 넓힐 것인지 묻게 만드는 작품이다.
《위도우스 베이의 저주》나 《플루리부스》가 신작 특유의 아이디어와 실험으로 주목받았다면, HBO의 《더 피트》와 《나의 직장상사는 코미디언》은 시즌을 거듭하면서도 힘을 잃지 않은 작품들이다. 《더 피트》는 올해 무려 25개 부문 후보에 올라 전체 최다 노미네이트를 기록했다. 시즌1 역시 작품상과 연기상 등을 휩쓸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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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의 한 응급실을 배경으로 15시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한 시간씩 15부작으로 만들어낸 《더 피트》는 시청자가 실제 응급실 안에 들어와 있다고 착각할 정도의 극사실주의를 표방한다. 의사부터 간호사, 직원, 환자까지 수많은 인물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협업하면서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상황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광경을 압도적인 밀도로 보여준다.
의학 드라마는 이미 너무 많이 만들어져 식상하다고 여겨질 법한 장르다. 하지만 《더 피트》는 접근 방식과 서사, 메시지를 달리하면 익숙한 장르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특히 수많은 의학 드라마를 만들어온 한국으로서는 《더 피트》의 실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의 직장상사는 코미디언》은 올해 시즌5로 종영한 작품으로, 지금까지 에미상 후보에만 86차례 올랐다. 특히 주인공을 맡은 진 스마트는 올해까지 전 시즌에서 코미디 여우주연상을 받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코미디라는 소재를 가져오면서도 성공한 코미디언의 자존심과 불안, 세대 교체에 대한 두려움을 섬세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낸다는 。이다.
한국에서는 코미디를 정극에 비해 가볍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 작품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편견인지 알 수 있다. 그저 웃기는 것만이 코미디가 아니다. 비극을 비틀어 희극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코미디가 가진 힘이라는 걸 이 작품은 감동적인 서사로 증명한다. 시트콤과 코미디 장르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돼 온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번 에미상은 시상식 자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줬다. 15년 만에 여성 단독 진행(머리슈커 하기테이)이나, 통상 드라마 시리즈나 리미티드 시리즈 작품상이 마지막을 장식하던 흐름에서 벗어나 올해는 코미디 시리즈 작품상을 마지막에 배치했다. 코미디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선택처럼 읽힌다. 이 변화 속에서 미국 4대 지상파인 ABC·NBC·CBS·폭스가 돌아가며 중계해 오던 방식도 올해 NBC 중계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제는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OTT도 생중계할 수 있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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